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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ansallnews

지방에 투자할 땅은 더 많다, 국가 균형 발전과 노무현 1 (한솔 뉴스)

노무현 정권과 함께 발효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으로 대통령 직속 기구가 생겼으니 이를 국가 균형 발전 위원회라고 한다 국가 균형 발전이란 국내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발전을 말한다 이 특별법 4조에는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 수립의 구체적 항목을 설명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계승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은 당시 새천년 민주당 당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이듬해 탈당하고 개혁 세력이 주축이 되어 열린 우리당을 만들었고 우리당에 2004년 입당하게 된다 그리고 선거법에서 중립 의무 및 헌법 위반을 사유로 탄핵 소추를 당한다. 하지만 이후 새천년 민주당 지금 더불어 민주당이 주축이 되어 탄핵을 주도한 행위는 국민 여론에 휩쌓이게 된다


2019년 기자회견, 출처 :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을 위하는 말을 자주 했던 노무현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탄핵을 주도했으니 국민은 그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록 우리당에 표가 가게 되었고 당시 총선의 표는 우리당으로 쏟아 지고 있었다.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던 5인방이 있었다. 당시 대표적인 탄핵 5인방 중에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있을 만큼 민주당이 주도하여 탄핵을 이끌었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7선의원이라는 최고의 기록을 달성할 만큼 민주당의 역사와 함께 간 정치인이다 노무현이 민주당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문통이 노무현 정권 때 비서직을 했었기에 지금의 문통의 당적인 민주당이 노통의 당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민주당 당적으로 대통령 취임을 했지만 바로 새로운 당을 노통은 만들만큼 민주당에 실망하였고 당시 개혁 세력과 함께 색깔은 노통의 성씨와 같은 노란색으로 열린 우리당을 창당하였다. 하지만 문통과 민주당은 노통의 사후에 지지하고 마치 민주당은 탄핵을 주도 안 했는 것처럼 노통의 표를 가져 가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노통의 구구절절한 국민을 위한 대화와 타협, 그리고 직접 농촌이라는 현장에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한 점 그리고 그 농촌민들과 함께 웃고 울고가 있었기에 감동을 안 할 국민이 누가 있으며 그 감동이 있었기에 지금도 노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 세력들은 그 때를 못 잊고 있다.



물론 노통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여중생 장갑자 사건이라는 단 2명의 미군 사고사를 바탕으로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정치 행보 때문에 기성 세대인 민주당 뿐 아니라 당시 야당에서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통은 국민을 위한다고 했지만 정작 2명의 사고를 가지고 전체 미국을 확대 해석하여 악의 축으로 꼽았다 부분의 전체에 대한 해석이라는 큰 오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 여론에 맞추어서 노무현은 당시 대선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대통령은 이성이 먼저이고 그에 따른 올바른 정책 그리고 국가관, 외교 방향 등을 보고 뽑아야 하는데 단지 국민의 감정을 자극 시켜 기분으로 뽑혔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성 세대와 그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안겨 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용기가 있고 뭔가 사람들에게 보일 만한 구구절절한 어록들을 남긴다. 하지만 대통령이 마음대로 했던 말들에 책임을 못 질 발언을 쉽게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어록 중에는 언론사 특히 당시 가장 힘 있는 조선, 중앙, 동아 일보를 겨냥하여 언론사를 개혁해야 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할 만큼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말 때문에 조중동은 점점 영향력이 떨어졌고 거기다 인터넷 신문의 확산으로 인해서 경쟁력이 떨어 지기 시작했다 그런 점들 때문에 노무현은 사도 세자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혹은 종교 지도자나 연예인과 비교 되기도 한다. 한솔 뉴스, 국민을 위한 종합 언론 yunsrer@naver.com https://www.hans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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